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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고 (파헤쳐보기)

'너는 종북!' 한마디면 '영웅'이 되는 대한민국 정치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언론과 SNS를 핫하게 달구고 있다. 

쟁점은 두 가지. 어제 있었던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사실무근’, 야당의 ‘인권유린 사건’이라며 국정원을 지대로 옹호해 나선 것. 그리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겨냥해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쏘아부쳤다는 것. 

그러고 나서 자기 홈피에 댓글이 500개나 달렸다고, 자고 일어나니 유명인이 되었다고 자랑하셨다는데, 나는 이런 그의 수준이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 국회 대정부 질문 하고 있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김진태 의원은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의 초선의원이다. 20년 넘는 검사생활 중 절반 이상을 공안 수사 (특히 이적단체 관련 수사)에 전념했던 사람이다. 

그답게 최근 황교안 법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선 전교조를 이적단체로 수사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황교안은 최근 안보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우리민족끼리 명단을 낱낱이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최근 전교조 관련 재판을 받던 교사들은 속속 무죄를 받고 복직되었고, 전교조를 ‘종북’이라고 비난한 보수단체는 ‘악의적 허위사실’에 대해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관련기사 클릭) 



암튼 모든 사건에는 분명 팩트(사실)가 있을 터, 옳고 그름의 판단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김 의원의 발언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 쏠려 있는 의혹의 눈길을 슬쩍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이며, ‘불법’을 옹호하면서 되레 ‘불법’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비이성적 매카시즘에 불과하다.



국정원 선거개입, ‘너는 종북!’하면 없던 일 되나?


(이건 수사를 통해서 밝힐 일이지, 수사도 제대로 안됐는데 국회의원이 무죄다 아니다 할 건 아니지. 국회의원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수사기관에 대한 압력일 수 있다는 걸 검사 출신인 김진태가 모르진 않을텐데...)



↑ 지속적으로 댓글을 달며 인터넷 여론을 관리해 온 국정원 직원


↑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발언한 박근혜 후보. 증거가 없는건지, 수사를 안한건지...



‘불쌍한 여직원은 무죄’. 

작년 대선 선거일을 앞두고 ‘댓글알바’를 하던 국정원 여직원이 발각되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한 말이다. 무죄가 입증된 것도 아니고 아직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이 발언은 당시 적절치 않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경찰의 부실한 수사와 성급한 결론을 놓고 여야의 공방이 치열했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최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사건을 축소하라는 경찰 수뇌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정원을 확실하게 수사해서 국민의 의혹을 해명해 줘야 하는 경찰까지 한 통속이었다니, 국민은 충격에 빠져 있다. 이 논란이 국가권력기관의 전방위적인 대선개입 의혹으로 번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마저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마당이다.


상황이 이렇게 번지자 심각하다고 생각한 걸까. 조선일보에서는 선거 개입이 아니라며 국정원을 노골적 옹호하는 칼럼을 이례적으로 1면에 배치하는 등 발 빠른 대응을 했고, 이에 발 맞춰 김진태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사실무근’이며 ‘인권유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세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국민이 무섭긴 한가보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국회의원을 동원해 수사개입성 발언을 하고 ‘일베’를 동원해 이를 찬양하는 데까지 나섰을까 싶다.


암튼 국정원은 현재 직원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를 철저히 수사해야 하는 경찰 지도부는 사건을 축소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 보통 일이 아니다. 여당 의원이 이런 국정원을 무조건 싸고돈다는 것은 더 심각하다.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을 감싸고 돌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행위가 아주 정당한 행위인 것처럼 찬양받는 이 상황.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종북!’ 한 마디 내뱉으면 판이 정리되는 이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어나니머스 코리아의 불법 해킹, ‘나는 일베!’하면 합법이 되나? 


최근 어나니머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회원명단을 ‘일베’에 유출한 장본인이 일베 회원인 중학생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 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일명 '죄수번호' 게시글. 불법 해킹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정보를 2차 공개했다. 이것도 불법. 

그런데 처벌하겠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



해킹은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그러나 사건 당시 수사기관은 해킹한 범인을 찾아내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공개된 명단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내사를 발 빠르게 시작했다.


이런 수사기관의 행태도 어이없는데, 김진태 의원은 ‘암약’, ‘좌익세력’, ‘고정간첩’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고구마 줄기까지 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한 술 더 뜬다. 이에 대해 정홍원 총리는 ‘철저히 수사하리라 본다’, ‘진실을 밝히는데 노력하겠다’라고 답했다, 무슨 똘이장군 시대도 아니고, 대정부 질문 시간에 이런 말들이 오고 가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


하라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수사도 제대로 안 하면서 실질적인 확인도 사실상 어렵다는 북한 사이트의 ‘회원명단’은 샅샅이 뒤지겠다는 소리. 차라리 대정부 질문 하지 말고 검찰에 대놓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건 어떨까.


해킹한 사람은 영웅 대접 받고, 해킹 당한 사람은 간첩 취급 받는 상황. 아무리 불법적인 행위를 했어도 ‘나는 일베!’라면 용서되는 이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이석기 의원의 4자 회담 제안, 솔까말 이성적 해법 아닌가?


김진태 의원이 찬양받는 주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석기 의원의 발언을 겨냥해 “지금 이 자리에도 대한민국의 적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했다는 것. 이에 민주당 의원들도 흥분해서 고함을 쳤다고 한다. 


극우 네티즌들이 "종북세력에게 ‘돌직구’를 날려 시원하다"는 댓글을 달았다지만 정작 그 ‘돌’에 맞아 멍든 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다.


그럼 여기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도대체 뭐라고 발언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의 핵무기가 모두 한반도에서 사용되면 안 된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부라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즉각 가동해라

대북 강경발언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유엔이나 국제사회가 아닌 우리 정부의 주도로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장관이 자신의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실질적인 핵 파워’로 규정했다

북한의 핵 보유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해법은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고자 남, 북, 미, 중 4자회담을 제안한다



요하자면, 기존의 제재와 군사적 압박의 방법은 전쟁위기만 증폭시킬 뿐이니 4자회담을 통해 새로운 평화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언 어디에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불릴만한 내용이 있나. 

북한의 핵보유 여부는 미국에서도, 학계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사실(fact)’이다. 이것을 언급했다고 해서(그것도 미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서) ‘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매카시즘이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애국가도 부르지 않는 세력’이라는 공격은 엄연한 ‘허위사실’이다. (애국가 다들 잘 부르고 국민의례도 잘들 하더만...)


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뭔가.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를 말한다.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국회의원이 ‘대한민국의 적’이라면 전쟁을 불사하자는 국방장관, 합참의장은 도대체 뭔가? 평화가 대한민국을 해치는 것인가? 전쟁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 색깔론, 매카시즘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팩트)을 왜곡하고, 가치 판단의 기준을 흐리며, 자신들의 치부 가리고, 민주주의와 국민을 협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 1970년대 유행한 '간첩 잡는 똘이장군'. 반공, 반통일, 호전적인 내용이 주된 내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새누리당의 민주의식이 6~70년대에 머물러 있는 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대북의식이 똘이장군 시대에 머물러 있는 한, 이런 논란은 계속해서 되풀이 될 것이다.


민주화 시대를 이끌어 온 건 색깔론이나 매카시즘이 아니라 성숙한 국민의 민주의식이었다.

‘종북’이라는 21세기 매카시즘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거세다는 것은 위기의 반증이기도 하다.

‘종북몰이’는 절대로 ‘평화와 통일’의 큰 물결을 이길 수 없다. 


김진태 의원은 그 까짓 수백 개 댓글에 유명세 탔다고 기고만장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처신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다간 스스로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해치는 ‘대한민국의 적’이 될 수 있으니...